LG그룹은 이달 말 정기 임원인사를 앞두고 계열사 릴레이 사업보고회를 진행중이다. 지난 2018년 LG그룹의 총수 자리에 올라선 구광모 회장은 그룹 내 신사업을 키우고 부진한 사업은 정리하는 등 체질 개선을 꾀하고 있다. 구 회장 취임 이후 4년간 LG그룹의 계열사 성과를 점검해봤다.

가전과 배터리는 LG그룹의 미래를 이끌어가고 있는 핵심 사업이다. 올해 3분기 LG에너지솔루션과 LG전자의 연결 기준 누적 매출은 각각 61조원, 17조원이다. 누적 영업이익은 각각 3조4817억원, 9763억원이다. 가전과 배터리는 LG그룹의 핵심 사업으로 수익성 측면에서도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다.
이중 배터리는 글로벌 시장을 호령하면서 LG그룹의 미래를 열어갈 사업이다. 탄소중립으로 인해 자동차와 발전 부문의 에너지원은 배터리로 바뀌는 추세이다. 배터리는 전기차와 ESS(에너지저장장치)에 탑재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인 SNE 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전기차 수요는 2020년 310만대에서 2030년 5180만대로 17배 성장할 전망이다. 전기차용 배터리 수요는 2020년 139GWh(기가와트시)에서 2030년 3254GWh로 23배 가량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스마트그리드 시장 규모는 2021년 360억달러(47조4840억원)에서 연평균 18.2%씩 성장해 2030년에는 약 1600억달러(211조400억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추구하려는 노력으로 석유화학 에너지 대신 재생에너지와 친환경에너지의 수요는 가파르게 늘어날 전망이다. 때문에 중국을 제외한 시장에서 글로벌 1위인 LG에너지솔루션은 매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LG화학의 전지사업부 시절인 2018년 매출은 6조4989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2091억원, 영업이익률은 3.2%에 그쳤다. 이듬해 매출은 28.4% 증가한 8조3502억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영업손실은 무려 4543억원에 달했다. 당시 LG화학 전지사업부는 19조7038억원 규모의 배터리 생산능력을 갖췄지만, 가동률은 59.7%에 그쳤다. 전기차용 배터리인 중대형전지의 수요가 많지 않았고, 생산시설의 수율 안정화 등으로 전지사업은 애를 먹고 있었다.
그러다 2020년 전지사업부 매출은 최초로 10조원을 돌파, 12조3635억원을 기록했다. 1656억원의 영업손실을 냈지만, 매출 성장률은 50%에 달했다. 전지사업에 있어 ‘규모의 경제’가 목전에 온 시기였다. 같은해 LG화학은 전지사업부를 물적분할해 LG에너지솔루션을 설립했고, 지난해 전지사업 매출은 전년 대비 44% 증가한 17조8519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7684억원을 기록하면서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영업이익률은 최초로 4.6%를 기록, 최초로 ‘미들 싱글 디짓’ 구간에 진입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전지사업은 돈 먹는 하마’라는 오명을 사업 개시 25년 만에 완전히 씻어냈다. 올해 3분기 누적 매출과 영업이익은 지난해 연간 실적을 넘어섰다. 올해 연 매출은 최초로 20조원을 돌파할 전망이며, 영업이익은 1조원을 거뜬히 넘어설 전망이다.
연결 기준 자산 규모는 39조8880억원을 기록, 40조원에 육박했다. 2018년 9조3769억원에 그쳤는데, 4년 만에 4배 이상 커졌다. 이렇듯 LG그룹의 전지사업은 2020년을 기점으로 완전히 달라졌다. 경영실적과 재무실적 모두 ‘새 역사’를 쓰고 있다.
전지사업은 특성상 2등을 허용하지 않는다. 1위 업체가 시장을 장악하기 때문이다. LG그룹은 1990년대 초반 전지산업을 거의 모르는 상태로 사업을 시작했다. 일본의 기술자를 데려와 리튬이온배터리를 거의 베끼다 시피했다. 그러다 2009년부터 공격적으로 전지공장을 건설했다. LG그룹은 전기차는 ‘배터리를 탑재한 자동차’가 아닌 ‘전지 자동차’라고 판단했다. 이후 20년 가까이 전지사업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했다. 적자가 지속되면서 전지사업은 중단될 뻔 했지만 지속됐다.
현대차 코나와 GM 볼트 등 두번의 대규모 리콜이 있었지만, LG에너지솔루션의 전지사업은 여전히 매해 40% 이상 성장하면서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다.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배터리 사용량은 43.7GWh였다. 전년 동기(36.9GWh) 대비 18.4% 성장했다. CATL이 유럽 시장을 발판으로 100% 넘게 성장하면서 LG에너지솔루션의 지위를 위협하고 있다. 그럼에도 LG에너지솔루션의 점유율은 30%에 달한다.
중국을 제외한 전 세계에서 운행하는 전기차 3대 중 1대는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CATL과 BYD에 시장을 뺏기지 않고 성장을 유지하는 게 가장 큰 과제이다. 이미 IRA(인플레이션감축법)에 대응해 미국 지역화에 성공했으며, IRA 시행 시기가 3년 유예될 전망인 만큼 공급망(SCM) 리스크도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 전지 뿐 아니라 소재·광물까지 IRA의 요건을 충족해 현지에서 점유율을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LG에너지솔루션의 과제는 글로벌 시장의 점유율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현재 비중국 시장에서 점유율 1위(점유율 30%), 글로벌 시장(중국 포함)에서 2위(14.1%)를 기록하고 있다. 이 점유율조차 매해 중국업체의 추격으로 위협받고 있다. 2030년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 규모는 2000억달러(263조8000억원)에 육박할 전망이다. 이를 산술적으로 환산할 경우 LG에너지솔루션의 예상 매출은 37조원 안팎으로 예상된다.
LG에너지솔루션은 현재 수준의 점유율을 유지한다면 2030년까지 약 2배 가량 이상 성장할 전망이다. 지금보다 점유율이 더 낮아진다면 LG에너지솔루션의 성장도 더뎌질 수밖에 없다.
LG그룹 배터리의 ‘산파’는 고 구본무 명예회장이다. 구 회장은 1992년 영국에서 2차전지를 처음 접한 후 럭키금속(현 LS MnM)에 가져와 연구하도록 했고, 1995년 회장 취임 후 본격적으로 전지사업을 시작했다. LG화학은 1998년 국내 최초로 배터리 양산체제를 구축했고, 이듬해 청주공장에 월 100만셀 생산체계를 갖췄다. 2000년 전기차용 중대형전지에 개발했고, 2007년 현대자동차의 HEV 아반떼와 2009년 GM 볼트에 납품했다. 이렇듯 구본무 회장은 LG그룹의 배터리 사업을 글로벌 수준으로 일군 장본인이다.
구광모 회장은 2018년 회장에 취임, LG그룹을 이끌고 있다. 구 회장은 선대 회장인 구본무 회장이 일군 가전과 배터리, 통신 사업을 물려 받아 ‘제2의 성장’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 배터리 사업은 선대 회장의 ‘레거시(유산)’로 구광모 회장이 뛰어난 경영능력을 발휘해 세계적 수준의 자리를 유지해야 하는 사업이다.
올해 3분기 기준 LG에너지솔루션의 수주잔고는 370조원이다. 2020년 말에 비해 수주잔고는 146.6%(220조원) 증가했다. 지금까지 LG에너지솔루션은 전기차 시장이 개화하면서 ‘톱티어’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지위를 앞으로 유지할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다. 시장 점유율을 유지할 수 있으면 성장을 이어갈 수 있겠지만, 경쟁 업체에 내어준다면 빠르게 쇠퇴할 수밖에 없다.
구 회장의 경영능력은 전지사업의 글로벌 선두 포지셔닝을 앞으로 유지할 수 있느냐에 따라 달리 평가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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